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사는 자영업자 김모(55)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수사기관 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불법 자금 유통 경로를 추적 중인데 당신 통장에 문제가 있으니 협조해 달라”면서 “국가안전보안코드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김씨는 신용카드 번호를 비롯해 카드 뒷면 서명란의 CVV번호, 계좌번호 등 자신의 금융정보를 알려줬다.

이어 사기단은 “당신 계좌로 돈을 넣을 테니 다시 우리 계좌로 이체하라”고 지시했고 김씨는 전화 직후 통장 잔액이 늘어난 것을 확인하고 아무 의심없이 이를 따랐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김씨가 확인해 보니 통장에 들어왔던 돈은 자신의 명의로 신청된 신용카드 대출인 카드론이었다. 5개의 신용카드에서 각각 600만원에서 1000만원이 대출된 것을 모르고 자신의 예금까지 합쳐 범인의 계좌로 이체했던 것이었고 김씨는 1시간의 통화로 모두 8000만원을 사기 당했다.

이렇게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빼내 본인 계좌로 카드론을 받게 한 후 입금된 돈을 범인의 계좌로 이체시키는 신종 전화금융사기(보이스 피싱)가 빈발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 달간 접수된 보이스 피싱 피해 사례는 916건으로 피해액은 10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한 달 평균 584건으로 61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러한 카드론 보이스 피싱이 최근 급증하는 것은 서류 심사 없이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쉽고 빠르게 대출할 수 있는 카드론의 특성을 범인들이 악용하는 것. 카드회사가 몇 가지의 금융정보만 확인하면 신청자를 본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범인들이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쉽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드회사들이 내세우는 '365일 24시간 대출', '무방문 무서류', '신청 즉시 입금' 등의 간편함을 사기단이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카드론 보이스 피싱은 다른 보이스 피싱에 비해 피해액도 크다. 한 사람이 하나의 신용카드로 최고 3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개의 대출 신청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결국 피해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상황으로 개인의 각별한 주의로 사기를 막는 것 이외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관계기관의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